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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ation/책

모리스 - E.M. 포스터

by 우울한펭귄 2022. 10. 19.

 모리스! 내가 책에 취미를 붙이게 된 계기이다. 책을 보니 2020년 11월에 샀다고 도장이 찍혀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때 모리스의 섬세한 심리 묘사에 굉장히 놀랐었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놓지 못하고 밤을 새 가며 다 읽었었다. (원래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은 이렇게 읽는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책 읽는것을 좋아하긴 했는데, 그것은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냥 심심하니 글씨가 써 있으면 무엇이든 눈을 굴려가며 읽는 그런 습관일 뿐이었다. 이전까지는 이런 오래된 소설은 너무 어렵고, 예술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모리스는 그렇지 않았다. 등장인물이 고민하는 것이 나에게 잘 다가왔고, 그의 그런 모습이 매우 진실되다고 실제 인물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아무도 물어보진 않았지만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책을 모리스로 꼽았었는데, 매 번 다시 읽어봐야지 생각만 하다 2년 후인 지금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이전과는 매우 다르게 느껴졌다. 모리스의 갈등은 섬세하기는 했지만 꽤 직설적이고 투박하기도 했다. 작가가 너무 멋을 부리며 쓴 부분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전에는 책의 대부분이 다루고 있는 것이 모리스의 내면의 갈등과 자아의 성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사회에 대한 동성애의 인식과 이에 굴하지 않고 사회와 내면의 갈등을 해소해 가는 모리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쓰여진 책이었다. 책 뒤쪽 지은이의 말을 읽어보면 이는 훨씬 더 명확하다. 두 남자의 사랑. 그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대해 논하며 읽기에는 아직 내가 너무 모자라다.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을 잘 모르겠고,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논해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내 감정과 감각이 이 부분은 정말 특별하고 인상깊다! 라고 외치는 부분을 중심적으로 읽었다.

 

1. 경직된 사회와 진실된 모리스의 충돌

 모리스는 여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속물적이기도 하고,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다채로운 모습이 그를 더욱 인간답게 해 주는 것 같다. 하지만 모리스가 다른 인물들과 가장 다른 부분은 그가 매우 솔직한 사람이고, 자기 인생에 대한 진실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라는 점이다.그의 모습은 계속해서 경직된 영국 사회와 대비된다. 돌아가신 지 꽤 되었지만 자꾸자꾸 언급되는 모리스의 아버지, 선생님, 배리 박사(이름이 맞나?),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클라이브까지.
 모리스는 성교육을 해주는 선생님이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볼까 무서워 하자 이렇게 생각한다.

순간, 소년은 선생을 경멸했다. <거짓말쟁이.> 아이는 생각했다. <거짓말쟁이, 겁쟁이, 다 헛소리였어> (20p)

 

 선생님은 건실한 영국의 기둥 그 자체일 것이다. 포스터는 이런 식으로 영국의 표준적인 자격을 갖춘 자들을 종종 조롱한다. 진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리스와 가장 많이 비교되는 사람은 바로 그의 아버지이다. 그의 아버지는 뛰어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고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남자이자, 아버지이자, 영국인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모리스에게 그와 같이 살아 갈 것을 기대한다. 다른 이들에게(심지어 가족 조차도) 모리스는 그 자체의 개인이 아니라 한 역할을 수행 할 건실한 남자일 뿐이다. 모리스는 계속해서 이런 아버지의 이미지와 싸운다.

 학교가 박수를 친 것은 모리스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평균적이기 때문이었다. 학교는 모리스의 형상 속에서 스스로를 축하할 수 있었다. (35p)
 그는 자신이 기독교를 믿는다고 믿었고,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 비난받으면 고통을 느꼈다. 중간 계급 사람들은 그 고통이 신앙인 것처럼 위장했지만, 능동성이 결여된 그것은 신앙이 아니었다. 모리스는 그 때문에 용기가 생기지도 시야가 넓어지지도 않았다. 그것은 평소에는 죽어 있다가 반대 의견에 부딪히면 비로소 살아나서 쓸모없는 신경처럼 통증을 안겨 주는 것이었다. 식구들은 모두 이런 신경을 갖고 있었고 그걸 신성하게 여겼지만, 성서나 기도서나 성사나 기독교 윤리나 그 어떤 영적인 것도 그들에게 살아 있지 않았다. (63p)

 

 거짓된 신앙을 습관처럼 믿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꽤나 날카롭게 써 놓았다. 진정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 없이 그저 관습적으로 인간을 대하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모리스는 깊이 실망했고, 이를 통해 사회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회는 스스로 도덕적이고 예민하다고 공언하지만, 정말로 어떤 일에든 마음을 쓰기는 하는걸까? (74p)
 더럼 가족이 모리스를 존경하게 되었다면 이상하겠지만, 아무튼 그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잘 알려고 하는 사람들만 싫어했고 ― 그 혐오는 강박적일 정도였다 ― 누가 그곳 사교계에 들어오길 원한다는 소문만 돌아도 그들에겐 그를 배척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 내부 ― 아무런 의미 없는 고상한 대화와 기품 있는 행동이 오가는 ― 세계에는 모리스처럼 그들의 운명을 동경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필요하다면 한숨 짓는 일 없이 떠날 소수의 사람들만이 들어섰다. (131p)

 

 더럼(클라이브) 가족들에 대해서는 참 직설적이게도 써 놓았다. 

「전 회의적입니다. 영국은 예전부터 인간의 본성을 잘 인정하지 않았으니까요.」
모리스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그도 영국인이었고, 오직 이 문제에 대해서만 깨어 있을 뿐이었다. (298p)

 

 이 정도면 너무 솔직해서 무서울 정도다. 

2. 모리스의 성장

 이런 노답 사회와 모리스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대립한다. 그러나 모리스는 남들과 다른 나를 점점 더 인식하기 시작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칼리지에 들어온 후 그는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살아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다른 사람들도 그 자신이 위장한 것 처럼 인습적 도안이 찍힌 판지 조각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밤에 뜰을 거닐다가 창문 너머로 누구는 노래하고 누구는 토론하고 또 누구는 책을 읽는 모습들을 보았을 때, 그들도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확신하게 되었다. 모리스는 에이브러햄스의 학교를 떠난 이래 솔직하게 살지 않았고, 배리 박사의 설교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남을 속이면서 자신도 속았다는 것, 남들에게 내면이 없는 놈으로 비치기를 바라면서 자신이야말로 남들에게 내면이 없다고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들도 내면이 있었다. 「하지만, 주여, 저와 같은 내면은 아니기를.」 다른 사람들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면서 모리스는 겸손해졌고, 죄의식을 품게 되었다. 세상 모든 피조물 가운데 자신만큼 추악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가 판지 조각인 척 위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면 세상에서 추방당할테니. 신은 너무나 거대한 존재이므로 별로 두렵지 않았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두려운 비판은 아래층 조이 페더스터노에게 듣는 것이었고, 가장 참혹한 지옥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었다. (41p)
이런 혼란을 겪은 뒤에 모리스는 남자가 되었다. 인간을 평가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그는 남의 애정을 받을 가치가 없었고, 인습에 찌들어 있었고, 옹졸했으며, 자신에게 거짓되었기에 남들에게도 거짓되었다. 그러던 그가 이제 가장 고귀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소년 시절을 관통한 이상주의와 야수성이 마침내 결합해서 사랑을 엮어 냈다. 아무도 그런 사랑을 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할 수는 없었다. 그게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육체도 아니고 영혼도 아니고 육체와 영혼의 결합도 아닌, 두 가지 모두를 통해서 움직이는 <그>였다. 고통은 남아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승리감도 느껴졌다. 고통은 그에게 세상의 심판 뒤에 감추어진 은신처를 일러 주었고, 그는 그곳으로 물러날 수 있었다... (86p)

 

 이상주의와 야수성이 뭔지 몰랐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까 정신으로서의 사랑와 육체로서의 사랑을 말하는 것 같다. 저때만 해도 '신체로 행하는 사랑은 죄'라고 생각하던 때인가...? 쨌든 모리스는 계속해서 클라이브랑 밀당을 하면서 사랑을 깨닫기도 하고 자기자신을 혐오하기도 하고 둘이 아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리고 둘은 사랑을 속삭이지만 커플들은 벌을 받는 법...후후
 속물적인 클라이브는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일반적인 사람으로 돌아간다. 이 일반 남성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좀 이상하긴 하지만... 돌아가지 않고 행복하게 둘이 잘 살았습니다 보다는 덜 이상하니 그냥 넘어간다. 
 여기서 모리스는 외로움을 느낀다. 이 외로움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그러나 단순히 사랑에 대한 상실에서 부터 오는 외로움이 아니라, 사회에서 한명의 인간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그 누구에게도 이해 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느낀다. 인간이 입고 있는 겹겹이 욕망의 옷을 벗기고 나면 그 마지막에는 남에게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남는다. 모리스는 그것을 어디에서도 충족할 수 없는 외로움에 빠진다.

그렇다. 그가 겪는 고통의 본질은 외로움이었다. 언제나 굼뜬 그는 그것을 깨닫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피붙이에 대한 질투, 굴욕감, 둔감했던 지난날에 대한 분노 따위는 사라질 것이었고, 수많은 상처를 남긴 뒤 결국 사라졌다. 클라이브에 대한 추억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외로움은 남았다. (190p)
그러나 모리스한테는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 말고는 아무도 중요하지 않았고, 어머니도 아주 중요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철저히 혼자인데, 왜 살아가야 하는가? 그럴 이유가 아무 데도 없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은 암울한 예감이 들었다. 죽음도 그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죽음도 사랑처럼 그를 힐끗 한 번 바라보고는 그가 <분투하도록> 남겨 두고 돌아섰다. (197p)
모두에게 똑같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내 인생이 이렇게 지옥 같은 거라고요. 무슨 일을 해도 저주받고, 안 해도 저주받아요. (287p)

 

 사회에서는 괴물로 취급되는 모리스는 미쳐버릴 법도 하지만 꽤나 잘 살아남는다. 그러다가 알렉을 만나고 한번 더 갈등한다. 모리스에게 사랑과 사회는 양립할 수 없다. 그래서 모리스는 고민하지만, 결국 그는 (거의 모든 것을 깨달은 승려처럼 행동하더니) 사랑을 선택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속은 미쳐버렸지만 겉모습은 정상적이게 사회에서 살기 vs 진실된 내가 되지만 문명에서 떠나기'의 이야기다. 책은 행복하게 끝나긴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문명을 떠나 행복하게 살기란 힘든 일일 것이다. 지금 시선에서는 초큼 비겁한 결말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 사회와 갈등의 해소를 위해서 투쟁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모리스의 고뇌와 자기 자신을 받아들임은 동성애가 거의 사형으로 다뤄지던 시대에 큰 의미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뭔가 알아채기는 했는데 생각을 하기 싫어서 의문이 드는 채로 남겨둔 부분들이다.


3. 영국의 계급에 대해

 포스터는 영국 사회에 대해 꽤나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계급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 같다. (1900년대 영국 계급 사회가 어땠는지는 잘 모른다..) 클라이브의 사랑 고백을 듣고 경악할 때는 [그가 지닌 교외 거주자의 영혼이 밑바닥까지 충격을 받아] (81p) 클라이브를 비난한다고 나온다. 참 재미있게 말한다. 278p에서는 이렇게도 말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사라졌다. 계급이 일어나 소리쳤고, 해가 떠오르면 바닥의 균열은 다시 벌어져야 했다.]
 모리스는 좋은 계급으로 태어나고 자라서 그 권위 의식에 젖어있다. 위 처럼 그런 표현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그런데 알렉을 만나고 나서는 이런 모습들이 (내 생각에는) 아주 급격하게 바뀌게 된다. 알렉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버르장 머리 없는 하인녀석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중에는 자기랑 다 버리고 떠나자고 하고 말이다.
 모리스가 클라이브를 만날 때는 정신적인 부분이 급격하게 바뀐다. 모리스는 본인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클라이브는 이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 결국 본인은 거짓된 기독교인에 불과했음을 인정한다. 근데 이에 대해 신앙은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고 전부 클라이브를 만나기 위해서는 '버릴 수 있는 패'였다고 말한다. 계급에 대해 생각이 바뀌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까? 모리스는 계급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생각이 없는 것이다. 다만 스커더를 만나야 하니 자기 자신을 합리화 하는 것일 뿐? 정말 모두가 평등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관습을 전부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상으로 떠나는 모리스의 결말을 위한 것일까? 남자와 여자만이 사랑해야 한다- 남자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받아들임. 영국에는 계급이 존재한다- 알렉과 평생 사랑에 빠짐. 이게 더 맞는 말인 것 같은데 별로 매끄럽지가 않은 것 같다. 아닐지도 모르고. 나중에 조금 더 집중해서 읽어봐야 할 부분 같다.


4. 과학

 과학적 방법론이 태동하던 시기였나? 모리스는 아직 과학에 대해 불신하지만 가치 판단이 수반되지 않는 도구로서의 과학에 대한 신뢰(희망일까?)가 나타나기도 한다. 나중에 영국의 역사나 과학의 역사 같은 부분을 읽는다면 다시 포스터의 과학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은, 진정한 과학이기만 하다면 연민보다 나았다. (299p)


5. 비

 모리스에게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때는 항상 비가 오는 것 같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냥 영국의 그지같은 날씨를 나타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 다시 앞에부터 정리하며 읽지는 않아서. 그냥 궁금증만 남는다.

 

6. 신뢰받는 지방 정치인인 더럼의 영지인 펜지

 

 펜지가 처음 등장할 때 부터 아름답지 않다고 한다. (124p) 그리고 점점 더 쇠락해 간다. (339p) 솔직하지 못한 자에게 놓여진 길, 미래를 암시하는 것 일까? 아니면 그의 쇠락해가는 계급에 대한 암시인지?


7. 산, 그늘진 골짜기

 산과 골짜기에 대한 비유가 참 많이 나온다.

그는 이제 그 감각들 아래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삶의 그늘진 골짜기로 내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골짜기는 크고 작은 산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곳의 안개를 마시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다. 모리스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오래도록 그곳을 더듬더듬 헤매었다. (29p)


 사춘기를 겪는 모리스의 모습이다. 모리스는 사춘기에 계속해서 꿈을 꾸는데 이 꿈은 모리스가 남자를 좋아할 운명을 타고 났다는 암시를 계속해서 준다. (남자의 목소리, 얼굴이 나타남) 삶의 최정점, 자아를 이해하고 진실된 자아로 살아가는 것이 산의 정상으로 비유되는 것 같고, 자아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을 삶의 그늘진 골짜기로 말하는 것 같다.

 

상승하는 것, 산등성이 위로 손을 뻗어 다른 한 손을 잡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가 태어난 목적이었다. (57p)


 이건 내가 너무 비유를 못 알아먹어서 책을 읽을때는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나중에 생각을 나름 해 봤다. 골짜기를 빠져 나와 진정한 나로 성장(산등성이 위로)한 나의 자아(손)로 또 다른 성장된 자아(다른 한 손)를 받아들인다는 말일까? 그러니까, 작가는 사랑을 말하려는 것 같다.
 간만에 책을 생각하면서 읽으려니 너무 힘들었다. 3번 이후로는 나중에 책을 한번 더 읽으면 다른 깨달음이 올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책 뒤에 붙은 지은이의 말이나 작품평론을 귀찮아서 안 읽었는데, 다음번에는 그것도 읽고 내용을 좀 더 보강해 봐야겠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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