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 변명을 좀 하자면... 저는 책을 꼼꼼하고 자세하게 읽지 않습니다. 읽고 싶을 때 읽고 싶은 부분만 자세히 읽어서 이해력이 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ㅋㅋ)
1. 묘사가 참 멋지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책은 묘사할 때의 표현력이 정말 대단하다."였다. 그간 읽어본 책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이 부분이었다. 이것이 찰스 디킨스의 특징인지는 다른 책도 읽어 봐야 알겠지만, 찰스 디킨스의 책이 참 잘 읽히고 인기가 좋다는 이유는 이것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표현은 재치있다. 영국인 특유의 비꼬는 유머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이런 표현을 생각 해 낼 수 있지? 스러운 부분도 있다. 책을 읽으며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부분을 좀 적어봤다.
그때 갑자기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들은 가까스로 몸을 비켜 살가죽과 뼈를 구해 냈다. 뭐, 구할 것도 거의 없긴 했지만 운이 나빴다면 그나마도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의 고민은 남에게 얻어 입은 옷처럼 입고 벗기가 쉬운 모양이었다.
밧줄과 도르래로 등불 대신 사람을 매달아 ...
그것은 마치 옛날 옛적에 만들어진 소리의 희미한 마지막 메아리 같았다.
어느 날 문득 바다가 주검을 밀어 올리는 것처럼 ...
또 어떤 분위기를 조성 할 때는 내가 마치 그 장면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의 첫 도입부에서 한 남자가 비가 오는 날 마차를 타고 여행할 때, 나도 그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아비규환이 된 생 앙투안을 묘사할때는 나도 그 사이에서 당장 하루의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애국 시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처럼 각 장면들은 영화보다도 생생하게 내 앞에 그려진다. 상상하는 대부분을 시각적인 요소로 옮길 수 있는 현대사회에 사는 나도 이정도로 느낄 수 있다면, 찰스 디킨스와 같은 시대에 이 글을 읽었던 사람들이라면 그에게 더 열광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2.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 겠다. (는 사실 뻥이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이제는 더 이상 백과 흑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사건과 사람은 한 가지 측면만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리 저리 살펴보고, 고뇌하고, 가끔은 틀리기도 하면서 나름의 판단을 내릴 것이다.
사실 이런 일들은 하루이틀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역사를 들춰보면 더 많은 예시가 있을 것이다. 마녀사냥부터 냉전 이후 반공이념 등 이성과 지성 없이 벌어진 수많은 일들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적절한 이유도 없이 죽어나가야 했다.
나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냥 옛날 옛적(이제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학창시절에 세계사를 배울 때 노예나 다름없었던 농노와 일반 시민들이 귀족을 끌어내고 자유를 쟁취한 혁명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좀 더 배경지식을 쌓야아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찰스 디킨스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자료 조사를 했다고 했는데... 영국인이기도 하고 동시대에 살지도 않았던 찰스 디킨스의 입장이 반영되지도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 그 시대에 직접 혁명을 목격한 사람이나 주도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프랑스와 영국의 입장 차는 얼마나 다를까? 유럽사를 좀 알고 나서 이 책을 읽으면 또 다른 시각을 가지고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유럽사를 공부하지 않겠지.
3. 등장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세세하면서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성장 소설과 자아 찾기 소설을 참으로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부분들이 적은 것이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등장 인물들이 성장하기는 한다. 마네트 박사와 칼튼이 그렇다.
마네트 박사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PTSD에 아주 극심하게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딸의 도움을 받아 일상 생활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는다. 이후 프랑스에서 사위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면서 안정을 되찾는 정도가 아니라 아픔을 이해하고 이전보다 한단계 더 성장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자기가 받았던 고통은 괜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런 때를 위해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 부터 자신을 돌봐주었던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굳건히 마음을 먹는 것도, 더 나아가 자신을 의지하게 하도록 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이 캐릭터가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찰스 디킨스가 책을 썼을 때는 지금처럼 정신의학이 많이 발달했을 때가 아닌데도, 생각보다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인자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또 굉장히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가까이서 오랫동안 관찰한 적이 있었는가 할 정도로.
또 하나의 캐릭터인 칼튼은 자기 입으로는 망나니라고 하는 사람인데 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망나니인지는 나와있지 않다. 그냥 승진 야심이 없고, 가족을 만들려는 생각이 없이 술만 먹고 다니는 사람이라 그런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이 인물이 개인적으로 너무 답답하다. 음, 이 인물의 타고난 성격이나 행동은 마음에 든다. 꽤 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다. 디킨스가 묘사한 부분만 가지고도 이 인물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성장했으며 무슨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칼튼은 너무 미지의 인물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디킨스가 그것을 의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칼튼은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일 뿐이라는 뜻이다. 칼튼은 등장 할 때 부터 다네이의 하위호환(?)으로 여겨진다. 잘생기고 다 가진 남자 다네이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처럼 생기가 넘치지도 능력이 출중하지도 않은 그냥 다 포기하고 사는 남자일 뿐이다. 그는 자기의 사랑도 포기한다. (여기까진 이해 할 수 있다. 칼튼이 어떤 남자인지 이해 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튼은 자기 자신을 구했어야 했다. 자기 자신의 목숨을 구했어야 했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 연민에 빠져 사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돌보고 성장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엔딩에서 갑툭튀해서 사랑하는 여자와 그의 가족까지도 지키는 순정남이 된다는게 좀 설득력이 없었던 것 같다.) 분명히 칼튼의 인생에서 자기 자신을 구하는 과정이 없지 않았을 것인데. 프랑스 혁명 만큼이나 그의 머릿속도 매우 치열했을텐데, 여기서의 칼튼은 너무 밋밋하다. 너무 그냥 소설적 도구로서만 사용된 인물이 아닌가 싶다.
4. 루시와 마담 드파르주는 좀 아쉬워!
위에 이어서 말하자면, 사실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은 자신의 속성을 타고났으며, 그런 속성들은 시간이 지나도, 사건이 일어나도 변하지 않는다. 아름답고 헌신적이고 모두가 좋아하는 루시, 억척스럽지만 그 누구보다도 아가씨에게 충실한 미스 프로스, 잔인하고 냉혹한 마담 드파르주...
그래서 주인공인 루시에게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루시는 변하지 않는다. 한결같이 아름답고 헌신적이다. 루시를 이해할 수 있고, 실제 존재하는 사람같다고 느끼는 것은 소설의 도입부에서 정신이 병든 아버지를 보며 두려워 하는 모습에서 끝난다.
오히려 마담 드파르주쪽이 감정 이입하기가 조금 더 낫다. 평생 자기 계층의 사람들이 굴욕과 가난을 짊어지고 사는것을 본다면, 그처럼 잔인하고 냉정한 사람이 되어 버릴 수 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마담 드파르주도 태어나기를 잔혹한 성격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가족을 죄다 멸해버리겠다는 그녀의 말이 그렇게 잔혹하게 들리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담 드파르주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그런 극적인 상황에 있지 않다. 하지만 매일 사랑스러운 가족들과 작고 안락한 삶을 지켜 나가는 것 보다는, 어쩔 수 없이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돈을 벌러 회사에 나가며 각종 매체에서 부조리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이를 바득 바득 가는 때가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루시와 마담 드파르주 둘 다 평면적인 인물이지만 현재의 여성들과 비교 해 보았을 때 루시가 조금 더 수동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루시를 더 매력이 없는 인물로 만든다. 물론 작중 내에서 루시가 해낸 일들이 마담 드파루즈가 해낸 일 만큼이나 대단한 일이다. 몇 십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아픈 누군가를 돌보고 오랫동안 지켜내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다. 물리적으로는 강하지 못하지만, 견디는 마음은 마담 드파르주의 살상력 만큼이나 강하다.
그렇지만... 마담 드파르주는 자신 가족의 안위보다도 자크를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멋지게 느껴졌다. (끝에 가서는 사실 그것이 개인적인 복수심이 가장 컸다는 것이 드러나지만 말이다.) 이렇게 보자면 내가 그냥 자기 주장 강한 여주인공을 좋아해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린 승리의 날이 오도록 돕는거야.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잖아. 난 우리가 승리의 날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어. 하지만 설사 우리가 승리할 수 없다 해도, 아니 승리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해도, 귀족이나 폭군의 모가지를 볼 수만 있다면 내가 그냥 그걸 확......"
"그래야지! 하지만 당신은 마음이 너무 약해. 희생자의 비참한 모습을 보거나 승리의 가능성이 보여야지만 전의를 불태우잖아. 그런 거 없이도 전의를 불태워야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괴와 잔혹함의 마담 드파르주와 사랑과 헌신의 루시가 대조적으로 그려진 것은 불만족스럽다. 너무 전통적이야. 이 책이 나왔을 무렵에는 다 이런 가치를 추구했을까? 그건 모르겠다.
5. 자기의 의무에 충실하기
디킨스는 자기의 일을 욕심없이 완수해 내는 인물들에 대해 호의적이다. (생각해보니 이거 약간 영국인들의 기본 자세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가 아는 다른 예시는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와 샘 갬지 이야기 뿐이다.) 루시나 자비스 로리, 찰스 다네이 모두 그런 인물들이다.
"루시는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며 살아왔다. 조용히 충실하게 사는 선량한 사람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루시도 시련의 시기에 더욱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다."
찰스 다네이도 무언가를 그렇게 바꾸려 하지는 않는다. 그냥 자기의 고귀한 핏줄과 재산을 버리고 영국에서 자기 가족과 밥벌이를 하며 그냥 일상을 살 뿐이다. 오히려 소용돌이에 직접 뛰어들어 무언가를 하는 인물은 부정적으로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영국인의 특성일까? 찰스 디킨스의 특성일까? 아니면 나의 편견일까? 이것도 모르겠다.
6. 마지막으로...
이렇게 마음에 안드는 내용을 한바가지 써 놨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에게 오랫동안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던 것을 보니 참 대단한 책임이 틀림 없다. 왜 대단한 책이라고들 하는지 이런 부분에서 이해가 간다. 나는 기본적인 지식따윈 없는데다 1859년에 살던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느끼는 바와 생각하는 바가 많아지다니. 실제로 책을 읽고 한 1-2주간은 이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할수 있는 한 적어 본게 이 글이다.
만약 내가 몇년 뒤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이 글을 다시 읽고 어떻게 생각이 달라졌는지, 더 알게 된 것은 무엇인지 또 다시 한 번 글로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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