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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오늘의 일기

by 우울한펭귄 2022. 10. 23.

IOS 16으로 잘랐더니 손가락 소세지가 붙어버렸네. 그리고 발가락이 나온것도 너무 신경쓰이지만... 다시 찍기 너무 귀찮아... 기타는 Squire의 Bullet 중고로 샀다

 

 

아니! 기타 레슨을 처음 갔다 온 지가 벌써 거의 한달이 지났다. 이제 다음주면 마지막 레슨이다. 기타 레슨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기타 레슨이 있기 이전의 나의 마음 상태에 대해 쓰려고 한다. 지금 좀 괴롭기 때문이다. 이번 달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는데 발령이 언제 날지 몰라+일이 구해지지 않아 집에 누워만 있는 중이다. 다들 너무 부럽다고 하지만 나는 정신이 너무 괴롭다.

 왜냐하면 이번 해 초부터 이렇게 불규칙한 생활에다가 집에만 쳐박혀 지내니 그렇다. 보통 수험 생활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기간이 길기도 하고, 그 동안 자기가 정해 놓은 공부를 완수해 내는 것이 당락을 결정하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공무원 시험은 절대 하지 않을거라고 장담했었다. 나는 태생이 게으르고 의욕이 없는지라 외부의 자극 없이는 거의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가 강제로 어떤 시스템 안에 넣어 놓으면 울면서 하고, 시스템 안에 속해있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는 사람이다. 이번 시험은 어쩌다 보니 다른 것이 잘 맞아떨어져서 하게 된 것이다. 시험 준비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냥 하루를 사는 것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하루를 시작하고, 밥을 먹고, 다시 누워서 잠이 들고. 그냥 하루를 평범하게 제 시간에 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수험 기간은 다 지났고, 지금은 아무 압박도 없는데 다시 무기력함이 나를 압도했다. 시간이 많은데 뭘 해야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재미있지 않고, 아무것도 흥미가 느껴지지 않고, 아무것도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런 무기력함이 시작된 것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수능을 본 이후부터이다. 고등학교까지는 그래도 대학을 가야 한다는 목표 하에 항상 바쁘게 살았다. 어쨌든 학교를 방학도 없이 주말도 없이 거의 매일 가야 했으니. 그 이후로는, 글쎄... 내가 내 삶을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때는 그것을 잘 몰랐다. 공허하고 무기력했지만 그것이 생산적이지 않고 한심하다는 생각에 그런 행동을 하는 나를 싫어했을 뿐이다. 그래도 20살인지라, 공허함과 무기력함 위에 뭔가 계속 쌓을 수는 있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기타를 치고, 항상 무언가를 공부했다. 하지만 모래성을 쌓는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내 인생 자체가 언젠가 다 무너질 무언가를 아니면 지금도 스르륵 아래로 소리없이 무너지고 있는 모래성을 쌓는 것 같았다. 이렇게 우울감에 빠져 살다가 대학을 가고 미친듯이 바쁘게 지내니 좀 나았다. 그러나 졸업하니 또 공허함은 찾아오고, 일을 하면 잠깐 나았다가 또 퇴사하고 뭘 준비할때면 항상 공허함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나타났다.

 20대의 나는 항상 조급했고, 완전하지 못하니 아무 쓸모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나를 믿지 못했고, 내가 나를 싫어했다. 물론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모래성이고 뭐고, 완벽해지고 싶지도 않고, 어차피 인생은 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왜 나는 남과 다르지? 라는 생각도 가끔 들기는 하지만 그리 의미 있는 질문도 아니다. 왜냐면, 어짜피 그냥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자라나면서 달라졌을 수도 있고. 내가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조급해 하는 습관은 남았다.

 기타를 칠 때도 그렇다. 기타를 처음 치는 주제에 기타를 마스터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기타를 정말 스트레스없이 뚱땅거리는 것이다. 이렇게 한 6개월 정도 슬슬 치면 쉬운 곡도 조금씩 접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조급해 하는 습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그 다음을 본다. 이걸 하면 그 다음은? 그 다음은? 그 다음은? 그리고 그것에 압도되어 스스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정말 미친 습관이다. 어느 정도로 미쳤냐면 나는 모든 것에 이것을 적용한다. 내가 일을 하기 시작하면 나는 일을 10년 이상 해온 사람의 방식을 본다. 나는 조금 노력하다가 유능함에 기가 죽는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아름다운 그림을 본다. 조금 노력하다가 그 섬세함에 압도되어 연필을 집어 던진다. 

 

 하여간 나는 이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고, 기타를 배운다고 내가 선택한 후 부터도 저런 생각에 휩싸여서 레슨을 가기 싫어했다. 내가 잠을 잘 못자고 생활 패턴이 망가지는 것에는 저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젯밤도 잠이 오지 않았다. 레슨에 너무너무너무 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시간 자고 일어나서 레슨을 갔다. 나는 잠을 못 자면 뇌가 거의 동작을 안하기 때문에 얼마나 멍청해 보일까 걱정했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꽤 재미있는 레슨이었다. 오늘 레슨의 절반은 선생님이 이펙터에 대해서 말씀하신 거였고 절반은 그린데이의 Basket Case 앞 소절 연습이었다. 이펙터는... 하나도 구분 할 수 없었다. 뭐가 다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선생님은 열심히 여러 개 누르면서 소리를 들려주셨다. 생각보다 전기 기타는 엄청나게 까다로운 악기였다. 기타 본체 자체에도 조절할게 많고, 앰프에도, 이펙터에도... 저걸 어떻게 다 고려하고 기타를 치는거지 싶었다. 진짜 곡을 녹음할 때 자기가 원하는 소리가 나와야 할 텐데 조합법이 저렇게나 많다면! 나는 평생 만족할만한 소리를 뽑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직 곡을 쳐보지도 않은 주제에 이렇게 눈을 찌푸리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처음이니까 안들리는게 당연한거고, 본인도 구분이 안갔었다고 하셨다. 다 하다보면 구분이 가고 욕심이 생기고 하는 법. 또 습관이 앞질러 갔다.

 나는 레슨 동안 계속 징징대고 운다. 선생님 어려울 것 같아요, 너무 빨라요, 이거 어떻게 해요, 못할 것 같은데요. 미리 겁쟁이처럼 호들갑 다 떨어놓으면 나에게 덜 실망하겠지 하는 심산이다. 여태 2시간 레슨 받은 사람한테 실망을 하고 말고가 어딨나, 웃기는 일이다. 그래도 선생님은 인내심이 많으시다. 그냥 이런 말에는 별로 신경을 안쓰시는 걸 수도 있다. 그래서 나도 부담이 없었다. 실수를 해도, 박자를 하나도 못 맞춰도 선생님 도와주세요 하고 말할 수 있고 별로 부담이 없다. 마음이 편하니까 조금 재미있게 느껴진다. 나 스스로가 나를 편하게 해야하는데 아직 그거까진 못한다. 아마 평생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실수해도 되고 그래도 마음이 편해도 된다는 것을 경험하는것은 언제나 좋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배울 수 있다면 내가 혼자 연습해도 재미가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뭔 뻘소리를 장황하게 쓰느라 레슨 다녀와서 거의 두시간동안 썼다 지웠다 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소리내서 말해야 할 내용이었다. 누가 그랬는지 글을 쓰면 나를 완전한 백지로 만들어 줄거라고 그랬는데. 적어도 글을 써놓고 나면 나는 마음이 편하다. 언젠가는 자기 연민이 쩌는 글 말고 누군가에게 도움도 되는 담백한 글을 쓰고싶은데, 아마 한참 걸릴 것 같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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